5월은 ‘결혼의 계절’이라 불릴 만큼 많은 청첩장이 날아드는 달이다. 친구, 동기, 직장 선배, 사촌 언니까지 주말마다 결혼식 참석 일정이 빼곡하다.
그럴 때마다 고민은 하나다. 축의금을 얼마로 할까? 친한 친구라면 10만 원, 평소 연락이 뜸했던 지인이라면 5만 원, 상황 따라 7만 원의 ‘중간지점’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건 잠깐의 고민이다. 한 번 지갑을 열고 나면 끝나는 문제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 결혼식 축의금보다 내 결혼식이 훨씬 더 걱정된다. 그건 돈의 액수가 달라서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내가 생각해야 할 것, 고려해야 할 것,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식 하나가 아니라, 관계, 기대, 체면, 불안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 행사’가 바로 결혼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던 결혼식은 왜 항상 예산을 초과할까?
결혼을 생각하며 상상했던 장면들이 있다. 햇살이 잘 드는 정원에서 따뜻한 음악과 함께 친구들이 웃어주고, 내 옆에는 든든한 배우자가 있다. 우리가 원한 건 소박하지만 따뜻한 결혼식이었는데, 막상 견적을 받아보면 왜 항상 예산은 두 배, 세 배가 될까? 예식장 대관료,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사진, 꽃 장식, 식대, 폐백, 답례품…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순식간에 수천만 원이 넘어간다. 여기에 양가 부모님의 체면, 하객 수, 친척들의 기대가 더해지면 ‘소박한 결혼식’은 점점 현실에서 멀어진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다. 이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단호하게 선을 긋든가, 주변의 요구와 기대에 맞춰 조금씩 포기하고 받아들이든가.
하지만 이 선택, 결코 간단하지 않다. 결혼은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산 조율은 단순한 숫자 계산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 그리고 우리 가족 전체의 가치를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어렵고, 그래서 더 지치는 것이다.
나를 위한 날인데, 왜 남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될까?
결혼식은 분명 내 인생의 중요한 날인데, 정작 그날을 위해 준비하면서 ‘나 자신’보다는 하객들의 시선을 더 신경 쓰게 된다.
"드레스는 예쁠까?"
"식장은 괜찮은 곳인가?"
"뷔페는 맛있다고 할까?"이 모든 질문이 ‘내가 만족할까?’가 아니라 ‘남들이 어떻게 볼까?’로 시작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특히 SNS가 일상이 된 요즘은 더 그렇다.
결혼식 사진은 자연스럽게 업로드되고, 누군가의 웨딩 영상은 다른 누군가의 결혼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무언가를 고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예산이 올라가는 이유도,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가 쌓이는 이유도 결국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문득,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내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남들이 볼 ‘나의 결혼식’을 위해 애쓰고 있는 걸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멈칫하고,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이 혼란은 결국 축의금보다 훨씬 더 큰 고민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결혼식, 돈보다 중요한 건 ‘기억’이라는 걸 잊지 말자
결혼식이 끝난 후 남는 건 세 가지다. 사진, 영상, 그리고 기억.예식장에서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지나가고 나면, 수천만 원이 들었던 예식도 결국 하나의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얼마를 썼느냐'보다, 그 날 얼마나 행복했느냐는 감정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결혼식은 부모님을 위한 행사야”라는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날을 기억할 사람은, 가장 긴 여정을 함께 걸어갈 사람은 바로 당신과 당신의 파트너다. 그러니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람도, 결국은 당신 자신이다. 부모님을 배려하면서도, 하객을 환영하면서도, 나의 마음을 존중하는 선택은 분명히 존재한다. 요즘은 이 진심을 아는 커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식 없이 사진만 찍는 ‘스냅웨딩’, 가족끼리 소박하게 치르는 ‘작은 결혼식’, 해외에서 둘만의 추억을 남기는 ‘스몰웨딩’,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노웨딩’까지. 형식보다는 사람과 감정, 그리고 기억을 우선하는 결혼식이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결혼식은 ‘축의금을 얼마나 받느냐’보다, ‘얼마나 후회 없이 웃고 울 수 있었느냐’가 중요한 순간이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그 날의 감정은 다시 만들 수 없으니까.